유흥업소 이미지 사진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공=www.heymantoday.com

유흥가 문화 역시 시대와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정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정책, 주요한 시대적 변수에 따라 부침을 거듭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고도성장에 따른 각종 여파들이 유흥가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강남의 급격한 발전은 대한민국 유흥 지도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신용카드의 등장과 인터넷의 발전 역시 새로운 음주행태를 불러왔다. 웨이터로 시작해 현재까지 무려 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룸살롱 업계에 몸담고 있는 명동 퍼시픽호텔 지하 ‘무겐’의 이정열 전무(49)로부터 대한민국 유흥가의 산 역사를 들어봤다.

이정열 전무는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78년도부터 유흥가에 발을 담가 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이 발생한 때가 1979년. 그러니까 연도상으로만 따지자면 박정희-전두환 대통령 시대를 거쳐 현재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유흥가 이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는 이러한 오랜 경력과 솥뚜껑, 국자, 다리미 등으로 맥주 따기, 도미노주, 불쇼 등의 퍼포먼스가 화제가 되어 SBS <생활의 달인> 등 각종 방송프로그램에 출연, 유흥가에서는 ‘유명인’으로 통하고 있다.

“본격적인 국내 유흥문화의 시작은 극장식 식당이에요. 그전에는 시민회관 같은 곳에서 가끔씩 연예인이 와서 공연을 하던 것이 전부였죠. 먹고 마시면서 공연을 보는 식으로 진화한 거죠. 그때부터 충무로, 명동, 무교동을 중심으로 이른바 ‘룸 레스토랑’이라는 게 생겼습니다. 지금과 같은 룸살롱 문화는 아니었고 가운을 입은 웨이트리스가 허리에 번호표를 달고 가볍게 옆에서 술을 먹어주는 정도였습니다. 지금과 같은 본격적인 접대와 화려한 유흥 문화가 생겨난 데엔 강남 개발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의 룸이라는 것은 고작해야 1m를 조금 넘는 나무 칸막이와 커튼으로 각 테이블을 나누어주는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강남 투기가 본격화되고 졸부들이 양산되면서 급격하게 고급화되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유흥역사를 되짚어볼 때 그 시절을 ‘제1의 황금기’라고 볼 수 있어요. 농사를 짓던 땅을 팔아 하룻밤 사이에 졸부가 된 일대의 많은 사람들이 업소에 쫄쫄이(슬리퍼)를 신고 다니면서 엄청나게 술을 마셔댔어요. 요즘 업소에서 아가씨를 선택하는 소위 ‘초이스’라는 것도 그때 생겨났습니다. 그전에야 그저 마담이 옆에 앉혀 주는 대로 앉히고 마시는 게 다였는데 졸부들의 허영심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죠. 막대한 돈을 무기로 자신이 원하는 여성을 앉히기 시작한 거죠.”

룸살롱 업계의 ‘산증인’ 이정열 무겐 전무.

강남의 황금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은 오간 데 없는 ‘전설’이 되어버렸지만 십여 년 전 IT열풍이 불어 닥칠 때 강남 유흥가는 ‘제2의 황금기’를 맞게 된다. 룸살롱 업소들의 질적 차이를 의미하는 이른바 ‘텐프로 업소’, ‘퍼블릭’, ‘쩜오’ 등의 신종 업태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절이 커다란 분기점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시에 강남 지역이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 유흥업소 업주들이 대거 강남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또 일부이긴 하지만 인테리어에만 십수억 원을 투자하는 고급 룸살롱들이 속속 오픈하면서 강남은 이제 ‘술과 여자와 돈의 잔치판’이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 강남이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강북은 자연스럽게 퇴조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북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대기업 본사들의 강남 이전’이었다. 강북에 있던 대기업 본사들이 강남과 기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강북의 유흥가도 마찬가지로 쇠락하기 시작했다는 것.

“서울 시내 어디든 대기업 본사가 있는 곳 주변에는 늘 유흥가가 잘 발달되어 있어요. 계열사나 지점 등에서 수금된 돈이 전부 한꺼번에 몰리는 곳이 바로 본사잖아요. 그런데 그 본사들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해가기 시작하면서 유흥가 역시 변화를 겪기 시작했어요. 일부 젊은이들의 문화야 별개겠지만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유흥문화는 확실하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손님의 성향 역시 강남과 강북에 따라 차이가 난다고 한다. 강북의 경우 대체로 조금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고 강남은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특히 강북은 ‘원조’, ‘정통’을 원하는 이들이 많고 술 문화에서도 인간적인 정을 논하는 사람들이 상당수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흥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신용카드와 인터넷의 발달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이른바 ‘견적 문의’를 한다는 점이죠. 공사판에서나 있을 법한 ‘견적’이 음주문화에 도입되기 시작한 겁니다. 각종 유흥정보 사이트가 속속 생겨나 유흥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하면서 손님들이 비슷한 업소들의 주대를 비교하고 업소를 방문하기 전에 이메일이나 쪽지, 해당 업소 영업실장들의 휴대폰을 통해 사전에 가격을 협의하게 된 거죠.”

소위 말하는 ‘N빵’이라는 것도 이 무렵부터 정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N빵’은 최종 금액을 동석자의 수대로 나누어 각자가 돈을 나누어 내는 것을 말한다. 10~15년 전만 해도 술자리를 주도한 사람이 전부 한꺼번에 돈을 계산하는 게 기본이었다.

룸살롱 여종업원이 룸 TV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제공=www.heymantoday.com

“우선 지금은 한 사람이 돈을 모두 내는 경우가 거의 사라졌어요. 예전에 비해 개인주의 문화가 더 발달해서 그런지 손님의 90% 이상은 전부 ‘N빵’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또 신용카드의 영향이 커요. 주머니에 현금이 없어도 일단 카드를 긁은 다음에 나중에 분배를 해서 돈을 낼 수 있게 해주었거든요.”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게 있다고 한다.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

“유흥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산토끼’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에요. 극장식 쇼가 성행하던 시대부터 있어왔던 은어인데 술 마시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말하죠. 그때는 컬러 TV가 나오기 전이라서 극장에 연예인이 온다고 하면 엄청난 인파가 몰렸어요. 이것 저것 주문해 마시고는 연예인 공연이 끝나면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역이용해 인파 속을 헤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잘도 도망을 간다고 해서 ‘산토끼’라고 부른 겁니다.”

그는 지금도 ‘2000년대판 산토끼’가 많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속고 속이는 경우가 이따금씩 있다는 것. 채팅 사이트 등을 통해 ‘울적한데 혼자 술 마시려니 적적해서 그런다’며 술을 사겠다고 약속하고 두세 명을 불러낸 후 흥건하게 취한 틈을 타 일행을 남겨두고 도망가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공짜술’을 얻어먹을 생각에 생각 없이 동석을 했다가 이런 일을 겪었다고 사정을 하는 젊은이들의 하소연을 대할 때 처음엔 많이 당황했었다고 한다.

“사실 저는 기분 좋으면 그날 오신 손님들 중에 제일 잘생긴 분의 술값을 제가 쏘기도 하거든요. 오랜 단골들이 기분 좋아 오시기도 하지만 실직한 후에 속상하다고 찾아와 이런저런 넋두리하며 하소연하시기도 하는데 만취해버린 그분들께 차마 미안해서 술값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간혹 대신 가게에 대납한 술값도 1년이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게 꼭 돈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이 전무는 30년에 가까운 유흥가 생활을 통해서 ‘정직과 성실이 최고’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세상의 어떤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여기 유흥의 세계에서도 정직과 성실이 통합니다. 손님을 대할 때는 정직하게, 나 자신을 대할 때는 성실해야 한다는 거죠. 이제 강북의 유흥문화는 한풀 꺾였지만 아직도 강북에 남아 있는 옛 추억과 향기를 원하는 손님들이 있습니다. 저한테 찾아오시는 단골들 중에는 20년이 훨씬 넘은 분들도 계십니다. 앳된 청년이었던 분들이 이제 반백이 되어 가끔씩 찾아주실 때마다 아주 반갑고 흐뭇하죠. 그분들을 위해서 저는 앞으로도 명동을 떠나지 않고 강북의 터줏대감으로 이곳을 지킬 생각입니다. 역사를 놓고 보더라도 유흥의 본류는 그래도 사대문 안이잖아요.”

그는 유흥가 생활을 한 뒤로 근 30년을 명동 일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믿고 찾아오는 오랜 단골손님과 화려하지만 뒤돌아서면 차디찬 강남과 달리 그나마 사람 냄새나는 강북의 정취가 좋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사실 유흥도 사람과 사람의 접촉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겉으로는 강한 척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터놓으면 의외로 외로워하는 손님들이 참 많다”고 말했다.

구성모 프리랜서  www.heymantoday.com 대표